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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수 이야기

친정 아버지를 멀리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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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아버지께서 너무도 갑작스럽게 돌아 가셔서

이제야 마음 추스리고 인사 드립니다.

 

병원에 입원 하신지 16일 만의 일이라 어안이 벙벙 합니다.

 

실감 나지도 않고,

집에 가면 여전히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계실 것 같기만 하고,

집 전화로 전화 드리면 '여보세요~'라고 하실 것만 같은데...

 

10여일이 지나고 나니

이제서야 서서히 실감이 납니다.

 

물건 하나를 봐도...

드시고 싶어 하셨던 과일,

즐겨 하시던 음식만 봐도,

'아...이젠 정말 아빠를 뵐 수가 없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 집니다.

 

어찌 그리도 서운하게 해 드린 것들도 많던지요.

 

어릴적 유난히도 아빠를 무서워 해서

살갑게 굴지도 못하다가...

 

몇년 전 부턴,

마음 깊은 얘기 나눌 사람도 없이

외로우실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마음 다 채워 드리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너무도 안타깝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5년전,

폐암 수술을 하시고도 끄떡 없으셨는데,

방사선 치료 받았던 자리에 염증이 생기면서,

기침을 하시면 각혈을 하셨었습니다.

 

유난히도 많은 양의 각혈을 하셔서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모셨었지요.

 

연로 하셔서 수술도 안되고,

암 치료로 인해 혈관도 석회화 되어 혈관도 묶을 수가 없고,

지혈제도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4일째 되니 각혈이 멈추는 듯 하여 한시름 놓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든가 봅니다.

안에서 고여 염증이 생겨 폐렴이 온 것이었습니다.

 

몇번의 고비를 넘기셨지만,

하루가 다르게 산소 수치도 떨어지고,

드시질 못하니 가끔 정신도 놓으시고,

그래도 살려는 의지는 강하셔서 약은 어떡해서든 잘 넘기셨었는데...

 

결국엔 더이상,

죽도 쑤어다 드리지 못하고,

폐렴에 좋다는 도라지 물도 다려다 드리지 못하고,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어 이것 저것 다 해 드려 봤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릴 수가 없었을 땐 정말 한 스러웠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아빠, 어제는 잘 주무셨어?"

"으잉~ 난, 어제 점암 고모 집에서 자고 왔다."

"그랬어~ 고모가 뭐가 그럽디요?"

"몰라~~ 뭐라 하는디...뭐라 그런지를 모르겄어야~"

 

고흥 점암에 사셨던 큰 고모는 진즉 돌아 가셨는데...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습니다.

 

엄마한테도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더라구요.

"용하는(늦둥이 남동생) 빌어 먹어도 밖에서 키우고,

자네는 나 없으면 농사 짓지 말게~"

 

그러시고는 말씀 조차도 못하시게 된지 4일 즈음...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시게 된지 이틀 즈음...

 

돌아가시기 전날 밤...

내내 병실을 지켰던 남동생이,

"아빠"라고 부르며,

손끝 하나 움직이시지 못하는 차디찬 손을 잡았더니,

온 힘을 다해 남 동생의 손을 꽉~ 잡으셨답니다.

 

그렇게 날이 밝아 오도록 동생의 손을 꽉~ 잡고 계시다가

7월 20일 금요일 아침 6시 30분 경에 영면하셨지요.

 

병원으로 모시던 날,

룸 밀러로 봤던 아빠는

여느때 같으면 주무셨을 텐데

광주 병원까지 가는 내내

한마디 말씀도 없이 눈으로 밖의 풍경만 쫓으셨습니다.

 

배에서 내리셔서 차에 오를 때 까지

100여 미터를 걸으실 땐,

제 손에 깍지까지 끼시며 제 손을 꽉 잡으셨었습니다.

 

한번도 주물러 드리지 못했던 아빠의 어깨며 등, 다리를

병원에 계실 때 첨으로 주물러 드려 봤습니다.

뼈만 앙상하니 남은 몸이 얼마나 안스럽던지요.

 

힘든 일을 못 하셨어서

안마를 해 드려 볼 생각은 한번도 못했었는데...

 

주물러 드리는 내내

눈을 지긋이 감으시고

어깨며 등, 다리를 맞기시는 모습에

왜 이제서야 이 짓을 하게 되는 건지

정말 한스러웠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엔,

사촌 오빠가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에

온 힘을 다해 머리를 끄덕이시더니,

 

제가 낼 다시 오겠다는 말엔

아무런 반응도 없으셔서 서운하다 생각만 했었는데...

그것이 그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빠의 얼굴을 감싸쥐고,

아빠의 볼에 입을 맞추며,

"아빠, 영숙이 갔다가 낼 다시 올게..."

이것이 마지막 이었습니다.

 

그 비바람 거세던 태풍도 보내고,

주말 낀 금요일에...

내내 푹푹 찌던 더위는

발인식 날엔 바람이 간간히 살랑 거리고,

계산 해 보니 49제도 금요일 이더라구요.

 

저희 아빠는 돌아가시는 순간 까지도,

자식들 편케 하시려고 애 쓰신건지...

 

모두 분들이 입을 모아,

복도 많다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좋은 곳에서

아프지 마시고,

드시고 싶으셨던 것도 많이 드시고,

따뜻한 마음 나눌 수 있는 분들 만나서,

마음 외롭지 않으시고 행복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관계를 맺고 있는 모두에게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하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 2005년 가을 추수 때 아버지 모습입니다.

 

 

 

▲ 24년 전 쯤의 부모님 모습입니다.

 

사진 속의 밭 저 뒷쪽의 양지 바른 곳에

저희 아버지가 잠들어 계십니다.

 

 

사진으로 나마 아빠를 추억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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